
한국문화예술명인, 2003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을 알았음에도 ‘한국문화예술명인’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작가로서의 욕심 때문이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로 진행되는 상업 사진의 최전방에서
일하면서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인간의 내면을 담은 사진을 찍고 싶었다. 촬영을
진행하면서 초창기 사진관 사진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옥연
서양화가
"나는 아직도 빈 캔버스가 두렵다.
그리고 또 그려도,
아침이면 뭔가를 그릴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하다가도
저녁에는 다시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매일 그린다."

차범석
극작가
"사람사는 이야기
변화무쌍하면서도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내 나이 팔순에 이르도록 무대는 광활하기만 하고
채워야 할 이야기는 아직도 하늘 끝에 이른다."

김영호
한국전통요리 전문가
"나라 일에 바쁜 바깥 어른 덕에
하루에도 수도 없이 손님들을 대접하다 보니
부엌에서 음식 만드는 일이 아름답고도 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나의 어머님이 그러셨듯이 나도 그 법을 따라 살았고
다음 사람들에게도 그 아름다움이
제대로 전해졌으면."

김남조
시인
"숭엄한 자연이 주는 기쁨과 사랑이란
허무한 인간사에 비해 절대적인 순간을 남겨준다.
예술가에게 자연은 끝없는 사랑이자
엄한 교사이자 생명을 준 어머니이다.
시는 이런 자연의
한 순간이나마 담으려고 애쓰는
내 인생의 기록이다."

이매방
승무와 살풀이츰 예능보유자
"차분하고 얌전하고 어딘가 애원이 깃들어 있고,
눈에 색이 흐르고 또 그 눈에 변덕이 죽이 끓듯 하면서
온간 감정을 나타내어
슬프고 아름답고 어여쁘고 수심이 가득 차고,
곱게 빗은 머리에서 머리카락 한 오라기가
살짝 흘러 내려오는 듯한 교태,
나의 춤."

이병복
무대미술가
"나는 뒷광대.
평생 남 빛내는 일만 쉼 없이 죽어라고 했다.
텅 빈 무대를 채우고 발가벗은 광대에게 옷을 해 입히고,
그렇게 이야기에 살을 덧붙이면서 무대 뒤에서 서성거리며 살았다.
아직도 조명을 배우고 싶고, 사진을 공부하고 싶다. 이 세상에 공부만큼 무섭고도 좋은게 없다."

신영균
영화배우
"헤밍웨이 원작 <老人과 바다>처럼 소년과 老人이 동시에 공감할 수 있는,
순수하면서도 人生의 깊이가 밴 그런 영화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는 게 내꿈이다."

정일성
영화 촬영 감독
"나는 조국과 함께 역사 속에서 카메라를 움직였다.
나의 마음이 대상의 마음을 찍어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영화가 됐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서세옥
동양화가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다. 명상을 통해 자연에 동화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모습.
내 그림은 삶의 어느 한 순간이지만 결국은 모든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김금화
만신
"하늘에서 내리는 복보다
덕에서 오는 복이 더 많은 법이다.
무당은 사람들과 어울려
복을 나누어주는 일로 일생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무당은 많이 따지고
많이 안다고 좋은게 아니다."

박서보
서양화가
"나는 한국화단과 투쟁하면서 살았다. 낡은 것들을 치우면서 새 생명을 불어 넣으면서.
그래서 나는 남들보다 더 그리고 더 말하고 더 읽어야 했다."

이영자
작곡가
"남들 흉내만 내다가 이게 내가 아닌데 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 소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내 머리와 손이 온전한 균형을 이루었다.
대금과 피리와 가야금의 소리야말로 내 몸에서 울려 나오는 진정한 소리이다."

박윤정
패션 디자이너
"테일러드 수트는 제일 좋아하는 옷이다.
그래서 테일러드 수트가 잘 어울리는 사람도 좋아한다.
20년 전에 맞춘 옷이 지금 입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고급스러움.
시간은 나의 옷에 그다지 많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백남준
비디오 아티스트
"욕망은 서서히 다가오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나의 예술은
한 평생 들끓는 욕망이었고
그 욕망의 대상은
예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김대환
대중음악연주자
"검지와 중지 사이에 스틱을 끼고 누를 때마다 약지와 새끼 손가락 사이에 낀 스틱을
튕길 때마다 내 손은 손이 지닌 원래의 형태를 잃었다.
그 후 전각과 글씨에 몰두하면서 나는 시력을 잃었다.
예술가는 자기 몸을 부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만한 작품을 내놓기 힘들다."

육완순
현대무용가
"춤 공부를 한다고 하자 우리 집 어른들은 모두 기겁을 하셨다.
미국에서 현대 무용을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춤추는 인생은 여전히 고달프다. 그러나 영원을 지배하는 한 순간의 빛.
그 빛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으나 그 빛으로 인해 나의 인생은 행복했다."

진태옥
패션 디자이너
"화이트와 블랙.
색의 시작이자 마지막인 흑백으로 돌아오려고
나는 그렇게 많은 컬러들과 함께 살았나보다.
단단하고 너그럽고 비어 있으면서 충만한 흑백과
나의 삶이 무척 닮아 있다는"

황병기
가야금
"가야금은 우주만물의 축소판이다. 나는 내 인생을 그 우주의 축소판에서 굿판을 벌였다.
그 가야금은 나였고 나는 가야금이었다."

고우영
만화가
"나는 펜이고 펜이 곧 나다.
이 손에 쥐어진 펜에서 나온 그림이
고우영이라는 이름을 만드니까.
역사의 갈피 속에서
숨겨진 감정을 찾아내
이야기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
나의 펜과 내가
지금껏 풀고있는 숙제이다."

김동건
방송인
"아나운서 40년.
사실 그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한눈 안 팔고 국민들에게 내세운 내 얼굴을 책임지며 살아왔다.
국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낸 40년이다."

김지미
영화배우
"정신없이 이 촬영장, 저 촬영장으로 불려 다니다 보니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찍은 여배우라고 하더라.
열여덟에 데뷔하고 나서 찍은 영화가 800편이다.
그러나 직접 영화를 제작하고부터 나이가 들어가는 얼굴과 함께 새로운 영화 인생이 시작되었다."

패티김
가수
"45년 간
자랑스럽게 서 오던 무대 위에서
동지가 생겼다.
내 딸이 내 인생을 모델로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순간 45년 간 쉬지 않고
엄격하게 살아 온 내 자신에게
상을 주고 싶었다."

강운구
사진가
"이 땅의 한 사진가로 나는 농부를 찍는다.
농업은 우리 문화의 뿌리이다.
나는 산업화로 급격히 몰락해가는
농업의 현장을 지켜보고
내 손으로 기록하고 싶다."

윤승중
건축가
"이젠 건축가도 예술가의 반열에 드는 세상이 왔나.
그저 사람사는 데에 필요하다는 생각에 하는 일이다."

박정자
연극배우
"고압적이다. 사람들은 내가 쏟아내는 에너지를 종종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나의 에너지가 무대를 가득 메우는 그날을 기다린다."

문희
영화배우
"영화를 찍던 시절이 하도 까마득해서
나는 가끔 내가 배우였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그러나 내가 울면 같이 울던
그 시절의 순박한 관객들만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 있다.
무슨 일을 해도 세상이 나와 함께 움직이던
일체감만은 잊지 못한다."

안숙선
판소리
"소리는
바른 사람에게서
바르게 나온다.
판소리 완창을 하려면
다섯시간, 여덟시간 걸리는 건 보통 일인데
그것도 내리 혼자서
판을 짊어져야 한다.
내가 스승에게서
모질게 배운 것도
바른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고,
가르치는 것도
그것이다."

정명훈
지휘자
"무대에 나가기 전에 나는 꼭 기도를 한다.
공연이 끝나면 그 날의 공연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항상 그 다음 연주를 어떻게 준비하고 공부해서 더 잘할 것인가에 몰두한다.
음악을 하면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겸손(humility)이다."

박완서
소설가
"청년 땐 만만하고
중년엔 삐치고
노년엔 상전인 친구는
내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