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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泙和 김용호의 저곳에 머문 ‘나’의 피안彼岸

칼럼리스트 지향미

카메라 렌즈는 둥근 원의 형태를 갖고 있지만,

카메라로 인화된 작품의 세계는 사각의 꼭지점이 연결된 스퀘어 안에 정지된 채 머문다.

그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역시 각 진 프레임 안에서다.

우리가 이곳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소에서 바라 본 저곳의 실체는 바로 이 둥근 렌즈를 관통한 저곳의 사지선다 같은 세상일지도 모른다.

작가 김용호는 반드시 이 정답이 필요하거나 가득해야 할 사지선다의 표면 위에서 눈을 감고 조용히 무모할 지 모를 자신의 한 발을 내디뎠다.

그는 그 어떤 정답도 룰도 그어두거나 갈망하지 않았다.

그가 원한 것이라곤 그가 존재하고 있는 실체의 현실에서 좀더 자신의 육체로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뿐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무엇도 정해져 있지 않은 원의 세계로 나아갔다.

이 세계는 그 동안 사진가, 김용호로 불리워진 사각의 세계와는 철저히 다르다는 것을 그는 곧 깨닫게 되었다.

1980년대에서 90년대로 전환하며 매너리즘적 사회 현실을 반영하듯

진부한 상업 사진 형식에 철저히 거부했던 그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새로운 혁신으로 도전해 온 포토그라퍼로 존재했다.

도큐멘터리 구성의 카메라 워크, 포스트 모던한 구도, 세련된 미장센, 대한민국 하이엔드 소사이어티가 공감하는

적절한 파격과 스토리적 구성의 작품 활동으로 이질적 사고 객체의 존립자로 확장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07년 대림 미술관 몸전 이후, 그는 자신을 통해 확장되었던 실체에 대해 고민하고

실체가 아닐지 모를 허상에 관해 되짚는 시간을 갖게 된다.

즉, 일방적이었던 김용호만의 “대립”에서 자연과 사유를 기반으로

한 열반의 “동화”를 끌어안으려는 시기를 자신의 내부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이끄는 것을 느끼게 되자 망설임없이그 원의 세계로 이입되었던 것이다.

그가 다시 도착한 이 세계야말로 자신이 진정으로 찾아 헤매던 공경(空景)의 세계라는 것을

이번 피안[彼岸]전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그가 떠났던 그곳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을지 몰랐다.

바람도 중력도 감촉도 없이.

조지 오웰이 미래 세계를 제시했던 1948년의 1984와도 같이 혹은,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암시했던 것처럼

리는 이 끝없는 원의 공간을 둥둥 떠다니는 뼈다귀뿐인 객체자로서 말이다.

그에게 중력 없는 의식의 흔들림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측정될 수 없는 시간은 그가 도착한 하늘과 물가에 닿아 있었다.

중력인지 무중력인지 느껴지지도 않는,

문득 고개를 드니 그 세계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인도한다.

풍광은 생채기 없는 미려함이 자연이며

연결 고리가 없는 윤회, 리인카네이션의 구상적 오딧세이이다.

과거의 기억을 뒤로 한 그는, 자신이 펼쳐낸 이곳이 완벽하게 가공된 현실일 수도

또는 인간의 갈망이 도달한 극한의 자연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는 침묵의 견자로서 측정 없는 부유의 시간에 미혹되었던 가.

사각 프레임 안에서 그는 무중력적 원의 세계에 대한 경외감,

그로 인한 몸의 낮춤이 수반된 수묵 담채가로서 희석해놓은 욕망의 정화,

사유의 반영에 배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길을 잃은 이방인이 되찾은 정신의 힘과

지탱을 영속시키는 상징적 세계관을 표출하였다.


그는 더 이상 대상을 베어내는 것이 아닌,

대상에서 배어난 자신을 투영한다.

자신의 두 손으로 발견한 미지적 세계에 두 발과 몸을 담그고

연근의 기원을 찾아 연적을 곁에 두었다. 


연 잎사귀들이 포개어지면서 점점 더 명확해지는 곳.

이곳이면서 또 이곳이 아니었던 곳,

도착할 수 있었던 곳이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도착할 수 없다는 것마저

심연 저 깊이 묻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곳.

비로소 이곳이었다고 생각했으나 과연 그것은 저 우주 모든 곳에

존재한 원의 구현이자 작가와 하나가 된 역설적 뫼비우스,

사각 프레임의 완성된 구성안에서 합체되었다.

그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이곳은 닿을 수 없는

저곳에 머문 ‘나’였던 것이다.

<Copyright. KIM YONG H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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